2011년 1월 10일 월요일

[김영명칼럼]책에 대한 불경한 생각

나는 날마다 책을 읽는다. 하지만 나는 책 읽는 것이 인생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매일 읽는 것은 밥벌이에 필요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안 읽으면 허전한 일종의 중독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집이나 연구실에 쌓아두고 모으는 습관은 없다. 아마 인문사회 교수들 중에 나만큼 책이 없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별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 아마 도서관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건성으로 넘겨봐도 쓸모있는 것

책을 많이 사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단행본, 학술 저널 등을 보내오기 때문에 보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온 집에 책을 가득 쌓아두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책장이 부족하면 책장을 사지 않고 책을 버린다. 책 종사자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단순하게 정리된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일 게다. 하지만 거기에는 책 모으기와 책 읽기가 유일한 취미인 내 아버지 같은 삶에 대한 일종의 반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공대생인 아들 녀석이 책과는 담 쌓고 지내도 걱정하지 않는다. 책 말고도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많으니까.

그런데 책을 읽을 때 눈으로만 글을 훑어가고 마음은 딴 곳에 가 있는 적이 많다. 번뇌와 잡념이 많은 불쌍한 중생이기 때문일 게다. 신기하게도, 계속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손가락은 책장을 넘기고 있다. 골의 여러 부분이 따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곤 했는데, 가만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책을 건성으로 읽으면서 나 딴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 올리기도 한다. 뭐, 아무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가 더 많겠지만 말이다. 그런 생각들을 아무 짓도 안 하면서 하기는 힘들다. 산책을 한다든가 목욕탕에 들어 앉아 있다든가 하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거꾸로 여러 생각을 하기 위해 그런 짓을 일부러 하기도 한다. 딴 짓 중에서도 책장 넘기기는, 욕조에 몸 담그기와는 다른, 일종의 지적인 분위기를 창출한다. 그러면서 지적인 생각들을 하게 된다. 물론 지적이지 않은 생각들도 많이 한다.

이렇게 보면 책장을 건성으로 넘기는 것도 다 쓸모가 있는 짓이다. 책이란 정독하라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베고 자라고도 있고 못난 놈 모서리로 때리라고도 있다. 뜨거운 주전자를 받치라고도 있고 높이가 안 맞는 침대 다리를 괴라고도 있다.

가끔 서점에 간다. 요즘은 다른 대부분의 분야와 마찬가지로 서점도 대형화됐다. 동네 서점들은 다 죽었다. 서점이 서점이 아니라 복합 문화상점이 됐다. 책만 사러 가는 곳이 아니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다른 잡화들도 사러 간다. 분위기가 매우 현대적이고 화려하고 상업적이다. 문화공간이자 상업공간이다. 요즘은 상업 아닌 문화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기도 했다.

화려한 디자인·부실한 내용 유감

진열된 책들을 보면 마치 백화점에 온 것 같다. 울긋불긋 온갖 화려한 자태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학술서적이 아닌 다음에야 책 내용이 아니라 디자인 등 외형의 화려함이 훨씬 더 중요한 구입 조건이 됐다.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불교 관련 책들을 몇 권 샀는데, 결국 구입 기준은 제목과 디자인의 예쁨과 가벼운 무게와 책장 넘기기의 손쉬움이었다. 내용은 어차피 얼핏 훑어보아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사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책도 이제 상품이 되었고 디자인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내용 또한 얄팍하면서 지적 허영을 채울 정도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놓고 돈 버는 법, 이런 것 가르치는 책은 그나마 솔직한 편이다. 책과 책방이 점점 텔레비전이나 잡지처럼 되어가는 것 같다. 모두 얄팍해지면서 잘난 분위기만 느끼려는 것 같다. 시대가 빠르고 얄팍해지는 추세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른다. 글자보다 영상이 우세한 이 시대에 책이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 이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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