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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젊은이들을 ‘침묵하는 세대’라며 질타했다. 이들은 정치에 냉담하고, 지적 활기가 없고, 사회적 대의에도 관심이 없으며, 경제적 안정에 더 신경쓰고, 개인의 삶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 학자 리처드 펠즈는 1940~50년대 미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마치 지금 한국의 대학을 보고 쓴 듯한 글을 남겼다. 기성세대의 눈에 젊은 세대가 곱게 보이지 않는 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지만 적어도 그때는 지적 활력을 잃은 젊은이들이 방치되지는 않았다.
“지식이 상품으로 바뀌면서 일체의 고유한 가치와 의미가 상실됐다.” <대학의 죽음>을 쓴 메리 에반스는 학문연구기관을 학생들이 자기 몫을 받는 ‘음식 서비스’ 사업에 비유했다. 지식경제의 행상들이 진리와 동떨어진 지식을 팔고 학생들이 그것을 소비하는 곳이 대학이라는 것이다. 지식인이 전문가로 대치된 대학에 대해 누구는 ‘교수의 죽음’을 얘기하고, 누구는 대학과 교수는 사망선고가 내려졌는데도 교육과 배움은 강조되는 건 역설이라며 ‘그 많던 지식인은 다 어디로 갔는가’를 묻기도 한다.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는 서울대에 지적(知的) 공동체가 없다. 교수들은 학문을 논하지 않고, 고시공부와 취업에 골몰하는 학생들을 방치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초빙석좌교수로 재직한 김성복 미 뉴욕주립대 교수(역사학·78)는 서울대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혀를 찼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과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고, “학술회의나 세미나에 잘 참석하지도 않고 모여서 술이나 마시고 시시콜콜한 정치 이야기만 한다면 그걸 지적 공동체라 할 수 없다”고 일침을 놨다.
대학을 가리키던 상아탑이니 진리와 정의의 도량이니 하는 말엔 곰팡이가 덮인 지 오래다. 서울대 교수들에게 지식인의 사명을 다하라고 다그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적 공동체가 무너졌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립 서울대가 이럴진대, 기업화로 치닫는 여느 대학의 지적 풍경은 물으나마나일 터이다. 김 교수는 “법인화로 얻은 자율(自律)이 자폭(自爆)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지적 공동체 없는 서울대 법인화의 앞날은 비관적이다. 더 비관적인 건 노교수의 충고를 뼈아프게 받아들일 서울대 교수가 과연 몇이나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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